기고-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
입력시간 : 2009. 10.26.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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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인 1909년 오늘 안중근 의사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단 하나뿐인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졌다.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치라"고 하던 겨레 사랑의 결의를 실천해 보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권이 침탈돼 국운이 기울던 시절 일본 제국주의를 호령하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하여 한국인의 기상을 세계만방에 떨쳤던 만 30세의 청년 안중근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의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중국 동북부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하얼빈역에서 처단했다.
곧바로 체포되어 일본 관헌에 넘겨져 뤼순 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았으나 그는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연한 자세로 일본의 침략 행위를 통렬히 공박하여 시정을 요구했다. 공판정에서는 의병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독립전쟁을 하여 적 이등박문을 죽였으니 이런 법정에서 신문을 받을 이유가 없다 하여 재판을 거부했다.
우리가 안중근 의사를 기리고자 하는 이유는 숭고한 애국심과 무한한 헌신성이 오늘날 세계화로 대변되는 무한경쟁 시대에 우리가 처한 역경의 상황을 넘어서게 할 정신적 귀감이기 때문이다.
안 의사가 제창한 동북아평화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시대적 과제이다. 갈등과 대결의 구시대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상황에서 안중근 의사의 공존공생과 평화의 정신은 더욱 절실하다 할 것이다.
안의사는 서른살의 짧은 생을 마감하였지만 역사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불멸의 족적을 남겼다. 목숨을 바쳐 의로운 길을 갔지만 우리는 아직 그의 무덤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의거 100주년을 맞아 우리 속에 안중근 의사의 정신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뮤지컬로 부활하고 연극으로 가까이 다가온다.
지난주에는 추억의 7080 충장축제 기간 동안 광주 금남로에서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 대한국인 손도장 찍기 행사가 열렸었다. 행사개시 2시간만에 종료될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안의사를 추모하며 즐겁게 동참했다.
안 의사의 손도장을 재현한 현수막은 정부 광주지방합동청사 외벽에 25일부터 게시됐다. "나는 대한국인(大韓國人)이다”고 선언한 안 의사의 순결한 정신이 우리 사회를 흠뻑 적셔주기를 기대해본다.
최경순 광주지방보훈청 선양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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