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년만에 무공훈장 찾은 창군 멤버>
- 2010-06-17 16:17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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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보훈청 참전용사 등 77명에게 화랑무공훈장
(광주=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 "젊은 시절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던 충정이 되살아나는 기분입니다."
6·25 참전용사인 김금남(80.광주 광산구)옹은 17일 정부광주지방합동청사에서 열린 '6·25 무공훈장 서훈식'에서 57년 만에 찾은 화랑무공훈장을 어루만지며 감동에 목이 메었다.
김옹은 국군 창군(創軍) 멤버로 1948년 5월 자원입대, 강원 원주에서 국방경비대(국군의 전신) 6사단 19연대 소속으로 복무했다.
1950년 예비부대로 사단본부가 있는 원주에 머물렀던 김옹은 전쟁이 발발하자 최전방에 배치돼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북한군의 침공을 필사적으로 막아냈다.
이후 전선이 밀리면서 낙동강까지 후퇴했고,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반격에 나서 압록강까지 진군했다.
그러나 압록강 수복을 앞두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경기도까지 후퇴했고 1951년 5월 용문산 전투에 참전해 중공군의 대공세를 막아내는데 일조했다.
김옹은 휴전협정을 앞두고 1953년 6월 화랑무공훈장을 받게 됐지만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도 모른 채 경기도 최전방에서 치열한 전투에 참여해야만 했다.
1961년 6월 제대한 그는 이후 광주와 전남 나주에서 부인 장순임(70)씨와 세 자녀의 가장으로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렇게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57년의 세월이 흘렀고, 지난달 6·25 60주년 특별사업으로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보훈청의 도움으로 영광의 훈장을 되찾을 수 있었다.
김옹은 "대단히 영광스럽고 행복한 순간"이라며 "늙은 참전용사의 긍지를 살려준 정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무공훈장을 받은 참전용사들은 국가유공자로 등록돼 의료혜택과 무공명예수당을 받게 되며 사망 시 국립묘지에 안장될 자격이 주어진다.
한국전쟁에서 무공을 세워 무공훈장 대상자로 결정된 서훈자는 16만2천950명으로 추산되며 아직도 8만4천여명이 훈장을 찾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bebop@yna.co.kr
<영상취재 - 광주전남취재본부 박미리>
miri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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