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만에 주인 찾은 무공훈장 | ||||||||||||
육군 39사단·진주보훈지청, 6·25참전용사 18명에 전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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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지킨 노력으로 받았던 당신의 무공훈장을 너무 늦게 찾아서 죄송합니다." 6·25전쟁 때 혁혁한 공을 세운 참전용사들에게 수여됐던 무공훈장이 전쟁 중이라는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전달되지 못하고 세월 속에 묻혀 있다가 반세기만에 드디어 주인을 찾게 됐다.
이번 전수식에는 화랑무공훈장 3개를 받은 이동석 할아버지를 비롯한 김점용·김종영·정찬삼·조덕규·최경락 씨 등 6명의 참전용사가 직접 받았으며, 나머지 12개 무공훈장은 가족들이 대신 받았다. 이날 역전의 용사로 화제를 모은 이동석 할아버지는 지난 1950년 징병제 1기로 입대해 5사단 예하 연대본부 전투훈련 소대장으로 고성 351고지전투, 오봉능선, 삼각봉 백암산 전투 등에서 큰 전과를 올린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1952년에 2번, 휴전되던 1953년에 1번 등 모두 3개의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으나, 훈장 제작이 어렵고 전쟁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훈장증을 받지 못하다 세월 속에 묻혀버렸던 것. 그러나 한국전쟁 5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을 벌이고 있는 육군 39사단과 진주보훈지청의 끈질긴 노력으로 결국 반세기만에 무공훈장을 찾게 됐다. 이 할아버지는 "3개의 무공훈장을 받은 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치열했던 당시의 전투를 생각하니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전우들의 모습이 아른거려 가슴이 아프다"며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살아왔는데, 이렇게 훈장을 찾아 줘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6·25전쟁 당시 숨지거나 끝내 무공훈장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이들을 대신해 무공훈장을 받은 부인·아들 등 가족들은 생전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 울먹거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정은석 할아버지를 대신해 무공훈장을 받은 이행녀(71) 할머니는 "금강산 전투에서 숨진 영감을 대신해 무공훈장을 받게 됐는데, 우리 영감이 살아서 이렇게 크고 훌륭한 상을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의행 진주보훈지청장은 "목숨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지킨 노력으로 받았던 훈장을 너무 늦게 찾아서 죄송하다"며 "서부 경남에 있는 무공수훈자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찾아 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들은 보훈병원 진료비 60% 감면과 매월 명예수당지급과 본인의 처, 자녀의 취업알선 때 가산점을 부여받는 것은 물론 국립묘지에 부부안장이 될 수 있는 등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는다. 화랑무공훈장 전수자는 이동석(78·사천시 곤명면), 김점용(75·산청군 단성면), 김종영(78·고성군 회화면), 정찬삼(80·남해군 고현면), 조덕규(77·통영시 서호동), 최경락(79·함양군 함양읍), 김수안(83·통영시 한상면), 강두연(77·사천시 죽림동), 유재주(85·통영시 광도면), 유진수(76·진주시 가좌동), 남상호(82·하동군 하동읍), 배윤태(76·사천시 곤양면), 정찬열(77·통영시 산양읍), 백유조(84·사천시 사남면), 신태우 (77·통영시 광도면), 김재환(77·하동군 금남면), 이종락(76·고성군 회화면), 이상유(77·고성군 개천면) 등 18명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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